Dance with me!

인생1./ Naked Life1. 2007/09/20 09:36




4. Dance with me!


나와 함께 춤을 - 춤 짱(?) 염상명목사의 춤과 건강에 대한 생각....




내 홈페이지 www.mryoum.com 의 동영상에서 내 춤 동작을 본 사람이라면, 목사라는 사람이?....책에서 지금까지 했었던 자기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 몸으로!...을 생각 할 수도 있다


내 몸에 맞게(?) 행동 했더라면 79년 8월 이후에 내가 해 낼 수 있었던 동작들이라야 느릿느릿, 조심조심 걷는 것까지만, 먹을거리는 죽이나 스프 또는 질척한 밥 정도에서, 그 외에도 춤, 당구, 볼링, 목사, 출판,...이런 것들을 시도조차도 못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끝났을 것이다


77년 이전에는 특별하게 춤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춤에 관심을 갖고서 좋아 한 것은 80년 이후부터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날씨까지 엉망인 80년 여름에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었다. 집에서 흑백 TV로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를 지켜봤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본선에 ‘미스코리아 진’ 김은정(?)양을 포함해 12명의 각국을 대표하는 미녀들이 뽑혔는데 본선에 오른 12명의 미인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원피스를 선물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원피스를 자기 취향대로 선택하여 골라 입은 후에 12명의 후보들이 최종 인터뷰 심사를 행해지기로 예정되었는데, 본선에 뽑힌 12명의 미인들이 원피스 고르는 것을 돕기 위해서 당시 우리나라의 톱 모델 12명이 그 원피스들을 입고서 세종문화 회관 무대 위를 모델들만의 독특한 걸음으로 누비고 다녔다.





세종문화 회관의 넓은 무대가 좁다고 걸어 다니는 모델들을 보다가 ‘아하, 바로 저거야!’를 속으로 외쳤다. 그날부터 내 걸음 걸이가 희한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몸 상태라야 계단을 내려 올 때는 계단에 발을 모아서 한 계단 한 계단을 옆으로 내려오고, 또 다시 발을 모아서 옆으로 내려오고,...한 마디로 말해서 ‘위태위태하면서도 엉거주춤하게’ 내려오던 때였다.


또 -지금처럼 무릎이 시린 증상은 없었지만- 발바닥이 너무 약해져서 당시의 시골집의 마루 바닥을 밟는 게 힘들어서 한 여름에도 양말을 신어야만 했었던 시기였다.

그럼 몸에 여자 패션모델의 걸음걸이를, 무대가 아닌 일상의 생활에 옮겨 왔다.


1권 ‘아직도 살고 싶다’의 Ⅰ부, 성기능부분에도 나오지만 모델들의 무대 걸음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운동 효과가 있다. 목과, 척추, 무릎을 곧게 펴고, 대신 어깨와 골반은 제각기 움직이는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한번 생각해 보라!

걷는 것도 위태위태할 정도의 몸에, 몸무게는 고작해야 44∼46㎏정도, 지금처럼 리드미컬하게 걷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뒤뚱뒤뚱, 어깨 따로 엉덩이 따로,... 지나가던 사람들도 뒤 돌아 볼 정도의 걸음걸이였다.


지금도 내 걸음걸이는 중년남자나 다른 목사들처럼 점잖고, 무게 있는 걸음걸이하고는 거리가 멀다.




대학시절에는 춤과 패션으로 학교 내에서 유명 인물이었다.

우스운 일화 2∼3가지만 말해 보겠다.

3학년 수학여행 중에 과대표 하던 친구가 “야! 상명아 너 지금 춤 동작 연습하고 있냐??.... 걷는 게 아니고, 나비가 팔랑거리는 것 같다!”고 할 정도의 걸음걸이였다.


또 다른 일화는 (이것도 수학여행 중에 일어난 일인데,) 그때 여관방을 4개 잡았다. 1개는 수학여행을 인솔하는(?) 담당교수, 1개는 여학생 방, 나머지 2개는 남학생 방 이었다.

난 지금이나 그때 나 일찍 자는 편이다. 수학여행 중의 다른 친구들이 큰 방에 모여서 놀 때도 난 잠을 자기 위해서 작은 방에서 샤워하고 베이비 기름을 온 몸에 발라서 마사지 한 뒤, 옷 하나 걸치지 않고 큰 대자(大)로 누웠다. 내 이런 모습을 본 과 친구 녀석이 소문을 내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까지 야단법석을 떨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에까지 내 몸에 대한 말이 나돌 정도였다.


(1984년 당시) 178㎝ 혹은180cm, 57∼58㎏의 몸무게, 적당히 음식조절하고, 춤을 자주 추고, 뒤뚱거리며 걸어서, 나만의 독특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보통의 다른 남자들이 이 신체 조건이면 ‘너무 말랐다는’ 말을 듣는다. 헌데 나는 옷을 입으나 벗으나 ‘말랐다’는 말보다는 ‘야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어깨나 골격 등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좁거나 넓거나 작거나 하지 않는 균형 잡힌 골격이다. 이 골격 위에 살이 있을 곳만 최소한으로 붙어(?)있는 일명 ‘뼈다귀 위에 초배 한 몸매’-(일명‘튀기’스타일. ‘튀기’는 세계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델이름임) -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 보다 2~3kg 늘어나서 공복 시에 60kg 정도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이 부분은 2003년 초고 원고를 기준). 대학시절의 수학여행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84년도에 다녀왔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아직까지도 20년 전의 몸매와 몸동작과 감성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별짓 다해가면서’ 까지 20대의 몸을 ‘붙잡아 둘 수만 있으면’ 붙잡아 두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얼굴, 몸매, 피부, 체력,...값 비싼 보약들과 각종 건강식품들, 비아그라와 보톡스, 운동 기구들과 다이어트 프로그램, 기능성 화장품들이 팔리고 있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시간의 흐름’을 늦추거나 멈추기 위해서 선택하는 몸부림들이다.


내가 내 삶을 부둥켜안고서 뒹굴러 온지도 벌써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나만의 독특한 내 삶의 방식들이 20대, 30대, 40대,...시간이 지나 갈수록 그 빛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내부 속에 잠재된 건강에 대한 희망을 내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끄집어내고, 까발리고, 그리고 실행으로 옮겨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는 있는 중이다.





중증의 다른 당뇨병환자들 / 관절이나 류마티스 환자들 /....그 밖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진행성 만성질환으로 몸이 - (특히 관절이나 근육에 경직현상이 오기 시작한 환자들) -망가져 가고 있는 환자들,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장애우들,...에게 사회적 상식이나, 고정관념, 그리고 통속적인 생각들을 접어둔 채 그들의 건강과 남은 인생을 위해서 막-춤을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 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선입견 중에서 막춤은‘ 젊고, 건강하고, 머릿속에 똥만 든 사람들이 무조건 흔들어 대는 몸동작’이라는 선입견을 버렸으면 한다.


내 글들과, 내 삶과, 내 몸매와 내 춤동작을 통하여 춤, 그것도 막-춤이라도 ‘늙고, 병들고, 머릿속이 꽉 찬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뛰어난 춤동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한다. 오히려 남들보다 나이가 많고, 병들고, 삶 전반에 대한 풍부한 지식까지 갖춘 사람들일수록 춤을 잘 출 수 있는 기질을 간직하게 된다고 본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인생의 사건들을 밑천으로 ‘감정’이라는 가장 값비싼 예술적인 재질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과 대중문화의 전반에 걸친 식견을 가지고 음악과 춤을 자유자재로 ‘재해석’까지도 해가면서 자신만의 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울부짖는 자유인’이면서 “춤-짱”이기도 한 염상명목사의 춤에 대한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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